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난 코르테스 (문단 편집) === 말년 === 1521년, [[아즈텍 제국|아즈텍]]을 무너뜨리고 [[멕시코]]를 건설한 코르테스는 한동안 떵떵거리며 잘 지냈다. 당시 본국은 한창 정권이 교체(트라스타마라 왕조 -> 압스부르고 왕조)되는 불안정한 시기였던지라 [[대서양]] 건너 [[식민지]]의 일까지 간섭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야심만만한 젊은 국왕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1516년에 즉위하자마자 곧장 [[독일]]에서의 내전과 대프랑스 전쟁(즉 이탈리아 전쟁), 대오스만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더더욱 신대륙에 신경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1522년 코르테스는 공식적으로 테노치티틀란 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런 이유로, 코르테스는 1526년까지 [[멕시코]]와 [[쿠바]]에서 왕과 다름없이 지냈다. 그리고 1519년에서 1525년까지 5차례에 걸쳐 자신의 무용담과 정복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서한을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송달했다. 이 기록은 지금도 남아있어 당시 아즈텍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졌는지 밝히는 데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비록 그것이 정복자의 입장에 치우쳤다는 한계를 지적받고는 있지만. 하지만 처음에는 전쟁에 여념이 없어 그저 코르테스가 보내오는 막대한 공물에 만족했던 카를로스 1세도 전쟁이 일단락되고 나자 슬슬 코르테스의 위치에 제동을 걸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코르테스는 본국의 큰 지원도 없이 약간의 보급과 지원병만을 가지고 멕시코를 통째로 정복한 인물로 군벌을 넘어 경쟁 식민지 국가를 세운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방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카를로스 1세는 1526년, 코르테스를 월권 혐의로 전격 파면했다. 당연히 코르테스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었지만, 자신을 파면한 카를로스 1세는 시시한 쿠바 원정대나 아즈텍인들 따위와는 현격하게 격이 달랐다. 그는 스페인 본토는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손에 넣은 데다가 [[이탈리아]] 반도까지 석권 중인 당대 유럽 대륙 최강의 승자였다. 파면에 대한 항거는 곧 대규모의 유럽 최정예 군대와의 전쟁, 즉 죽음을 의미했다. 별 수 없이 일단 귀국길에 오른 코르테스는 황제를 알현해 직접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며 황제의 환심을 얻으려 노력한 끝에, 코르테스의 호방함과 아부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던 카를로스 1세(카를 5세)는 코르테스를 다시 신임해주기로 했다. 이리하여 코르테스는 멕시코로 돌아가 1540년까지 다시 10년 이상 총독으로 군림하며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1세는 코르테스에게 스페인 국왕의 대행자인 부왕의 지위만큼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할 일이 없어지자, 1540년, 코르테스는 60세에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다시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럽]]에 [[초콜릿]]을 처음으로 전파했다고 한다. 그는 드넓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돌아온 자신이 당연히 큰 환대를 받으리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카를로스 1세의 태도는 냉담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카를로스 1세의 관심이 식은 것은 물론, 새로운 경력을 이어가기엔 코르테스의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카를로스 1세는 그에게 두 번 다시 신대륙에서 활동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르테스는 고국에서 그의 성공을 시기한 수많은 정적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활약을 멈출 생각이 없었던 코르테스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황제에게 지위와 연금을 달라고 탄원했지만, 카를로스 1세는 코르테스가 멕시코에서 이룬 업적에 부담을 느껴서 줄곧 무시했다. 코르테스에 대한 관심이 식은 이상 카를로스 1세에게 코르테스는 잠재적인 정치 핵폭탄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코르테스의 끈질긴 탄원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한 번 알현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알현식 와중에, 절차에 따라 코르테스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것을 요구한 카를로스 1세는 이런 답변을 듣게 되었다. >'''"저는 폐하의 조상들이 물려주신 도시들보다 넓은 영토를 폐하께 바친 사람입니다."''' [[https://web.archive.org/web/20080808111913/http://students.ou.edu/P/Kathryn.R.Pruitt-1/spanishtreasure.html|#]] 이 대답에 마음이 움직인 카를로스 1세는 이후 [[독일]]에서의 신•구교간 전쟁의 장교로 코르테스를 등용해 다시 한번 경력을 잇도록 허락했다. 코르테스는 여기서도 큰 활약을 하며 성공가도를 걸었다. 예순이 넘은 고령에 그냥 은퇴해서 지금까지 번 재산으로 먹고 살아도 무방한데 끝까지 활약을 멈추지 않은 것에서 코르테스의 기량이 돋보인다. 이런 활약상에 크게 감명을 받은 카를로스 1세는 코르테스를 [[북아프리카]] 원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했고, 코르테스는 카를로스 1세가 친정한 원정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코르테스의 마지막 경력이 되어버렸는대, 알제리 원정 도중 폭풍을 만나면서 스페인의 함대가 박살나버리고, 코르테스와 카를로스 1세도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올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 없는 실패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카를로스 1세가 코르테스를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 대거 해임해버렸고, 이후 코르테스가 직위를 얻으려해도 카를로스 1세는 다시는 코르테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코르테스는 고국에서 카를로스 1세의 계속되는 냉대에 지쳐 멕시코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고, 출항을 위해 세비야로 왔으나 이질에 걸려 쓰러진 후, 설사병에 시달리다가 나중에는 흉막염으로 악화되었다. 결국 코르테스는 1547년 12월 12일에 아내 후아나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그는 자신의 서자들을 모두 적자로 인정했으며 그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누에바에스파냐]]로 옮겨져서 매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